[클릭이사람] (541) 다큐촬영… 성악…비뇨기과 원장…식당 사장으로 변신한 이강산

김명수기자 | 입력 : 2013/11/05 [08:43]
[클릭이사람] (541) 다큐촬영…성악…비뇨기과 원장…식당 사장으로 변신한 이강산 
    
이런 의사를 본적이 있는가. 시를 쓰고 피아노를 치며 합창단․ 성악가로도 내공이 깊다. 그 뿐 아니다. 다큐 사진작가로 왕복 700km 먼길을 주말마다 오가며 찍은 가덕도 숭어잡이 사진집(가덕도 숭어잡이․ 눈빛출판사)까지 펴냈다. 그런 그가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      © 인물뉴스
올 봄까지만 해도 청주 내덕동에서 알아주는 비뇨기과 원장이었던 이강산(52) 박사는 16년만에 진료 가운을 벗어던지고 지난 3월 천안 구룡동에 오리 고기 전문점(신통방통)을 오픈하여 식당 사장으로 전혀 엉뚱한 길을 가고 있다. 

천안아산역에서 택시로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신통방통을 찾아가 16년을 몸바쳐온 비뇨기과 원장직을 내려놓고 식당 사장으로 인생길을 유턴한 이강산 박사를 만나 인터뷰했다.

“전문직 중에서도 자타공인 부러움의 대상인 의학박사 원장님이 잘나가는 병원 접고 도대체 이걸 왜 했어요?”

기자의 첫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최근 몇 달 동안에 수백 번도 더 들은 말이라며 껄껄 웃었다.

“의사라는 직업이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잠시도 짬을 낼 수가 없잖아요. 2~3평 밖에 안 되는 좁은 진료실에서 하루 종일 자리 지키고 있어야죠”

동사무소 민원서류 한 통을 떼려 해도 본인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누군가를 대신 보내야 한다. 의사가 전담하는 환자 진료는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팔방재주를 가진 이강산 박사에게 의사 가운은 애시당초부터 안 맞는 옷이었는지 모른다. 좋아하는 다큐사진도 마음껏 찍고 여행도 가고 성악도 하고 골프도 치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데 도통 시간을 낼 수가 없는 현실이 참 답답했노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식당은 안 그렇잖아요. 주인이 자리에 없어도 다른 누군가가 대신할 수 있으니까요”

고향이 어디냐고 묻지를 마라. 말을 하면 옛 생각에 마음 서럽다. 나훈아 씨가 부른 노랫말 가사 중에 들어있는 이 대목의 주인공은 이강산 박사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속물근성으로 무심코 ‘고향이 어디세요?’ 묻자 잠시 뜸을 들이던 그의 입에서 ‘없어요’ 대답이 튀어나왔다. 설명을 듣고서야 알았다. 

동두천에서 출생했지만 태어난지 몇 달 만에 이사 나왔다. 기억이 있을 리 없다. 초등학교를 7군데나 옮겨 다녔다. 마지막 학교는 전학 6개월 만에 졸업했다.

“그러니 고향을 물어도 어디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7번이나 옮겨다닌 초등학교 역시 모교라고 할 수가 없죠. 중학교도 다른 지역에서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는 대구서 나오고 대학은 대전에서 졸업했고 개원은 청주에서 했어요. 그리고 식당은 천안에 차렸습니다”  

수원, 인천, 오산, 경기도화성, 부여, 영덕, 문경, 경산(와촌), 화양, 대구, 달성, 대전(충남대). 청주, 천안… 살아온 지역을 꼽자니 10손가락으로도 모자란다. 타고난 역마살은 어쩔 수 없나보다.

▲      ©인물뉴스

“저도 고향이 그립거든요. 사진을 찍는 이유도 그래서인지 모릅니다. 제가 은연중에 카메라로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제 고향의 모습을 찾고 있더라고요. 가보고 싶은 거죠. 마음속에 품고 있는 참 아름답고 포근한 고향 같다는 느낌이 오는 그런 동네를 찾아가는 거죠”

생업에서 은퇴하고 미래에 살고 싶은 그런 마을을 열심히 찾아다니고 카메라 프레임에 담아놓고 싶다는 그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초등학교부터 그토록 많은 학교를 옮겨 다녔으면서도 공부 머리 하나는 타고났나 보다.

충남대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보건소 복무후 선병원에서 1년간 비뇨기과 과장으로 있다가 청주에서 비뇨기과 개원의로 1997년부터 올 2월까지 16년 동안 환자를 보살폈다.

비뇨기과 의사로 진료실 옆에 항상 피아노를 비치해 놓고 메모지로 신청곡을 받아 진료 틈틈이 환자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멋쟁이 의사로 정평이 났다.

주중엔 환자 진료를 보고 주말이면 부산 가덕도 숭어잡이 사진 취재를 다녔다. 그가 사는 청주에서 가덕도까지 왕복거리가 700km나 되는 먼 길이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가덕도 숭어잡이 목선이 모여 있는 사진을 봤어요. 그 순간 가보고 싶더라고요. 무조건 찾아갔어요. 그 때가 2011년 봄이었어요. 그 뒤로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가량 진행되는 숭어잡이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주말․ 휴일마다 갔어요”

매년 3월부터 5월까지는 가덕도 대항마을 앞바다에 숭어 떼가 들어오는 시기다. 대항마을에서 이강산 선생은 2011년 봄을 그렇게 보냈다.

처음에는 숭어잡이 사진 취재에 재미를 못 느꼈다. 그런데 찍다 보니까 다음에는 좀 더 잘 찍을 수 있겠다 싶은 아쉬움이 남아 자꾸 갔다. 토요일 밤에 가기도 하고 일요일 새벽 1시에 출발했다가 밤 12시 넘어서 돌아오곤 했다.

일요일마다 밤 1시에 일어나 부산 가덕도로 차를 몰고 내려가서 숭어잡이 어부들과 하루종일 부대끼며 사진찍고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20011년 11월 숭어잡이 현장 속 어부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사진집을 냈다.

그가 가덕도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숭어잡이 어로장 허창호 씨를 만나 사진 촬영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      ©인물뉴스
공교롭게도 기자가 2001년 8월 가덕도로 현지 취재를 가서 인터뷰한 인물이 바로 어로장이었던 허창호씨였으니 왜 아니 그러겠는가.

“옛날에는 숭어를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잡을 수 있었대요. 그런데 연근해 어족자원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요. 이러다가는 전통으로 내려오던 가덕도 숭어잡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어요. 자료를 남겨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다큐를 찍기 시작했어요”

알고보니 그는 대전시립합창단 창단멤버로 성악 합창활동도 오래 했다. 중학교 때부터 성악을 한 성악가였다. 그런 사람이 의사로 17년을 있었다니 좀이 쑤실만도 했다.

“제가 문과쪽 문화인류성향이 강해요. 비뇨기과 원장으로 있으면서도 뭔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했어요. 언젠간 의사로 갈수도 있겠지만 건너온 다리는 불 싸지르는 각오로 외도를 감행했죠.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오리고기 전문 식당입니다”

잘나가던 비뇨기과 운영을 후배에게 맡기고 식당을 운영한다는 용기가 놀랍다.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식당을 운영하면서 결식아동 돕기도 하고 5월 어르신 위안잔치 등을 열린 마음으로 해왔다.

“앞으로도 제 기술이나 백그라운드로 누군가를 도우면서 사회적 이미지를 구축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저 자신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보람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음의 평화도 얻고 사회적으로 기여도 하고 남은 인생을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는 인생을 3모작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태어나서 의사로 살아온 지금까지가 1기라면 2모작은 평소와 다른 일을 해보고 마음속으로 가지고 있던 이상 구현을 펼쳐 보고 싶어한다.

식당에 주력하고 있는 지금이 2기로 오리전문식당을 인수해서 직접 개발한 소갈비 메뉴를 추가했다. 오리 사진전도 구상중이고 정미소 사진에도 관심이 있어서 계속 찍을 생각이다.

“3번째 인생은 조금 다른 의미로 살고 싶어요. 지금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오리지널 전공 살려 미개발국가로 가서 현지 주민들과 어울려 살면서 슈바이처까지는 아니지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해주고 싶어요”

의사는 한우물만 파고 진료실에서 평생 청진기를 잡는 게 미덕일 수 있지만 그는 편한 길을 놔두고 다른 길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

“정말 행복이 뭔지 보람있는 일이 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구체화시켜보고 싶어요. 아직은 아마추어적인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지만 생각이 있으니까 언젠가는 길이 열리겠죠”

그는 지역 언론 충청타임즈에 이강산의 사진 만평이라는 타이틀로 2년간 연재를 해왔다.

사소한 사진도 제목을 붙이고 글을 살짝 붙이면 얘기가 달라진다면서 자신이 연재한 몇 장을 예로 들었다.

자식들 키우느라 갈라지고 터져버린 어머니의 손. 딸내미 결혼식날 예식장에서 그렇게 감추고만 싶던 그 손. 어휴, 예식 때 장갑끼는 관습이 없었으면 어쩔뻔 했누. 이런 식이다.

사실은 그 손이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로운 손인가. 사진에 텍스트를 붙이면 이렇게 완전히 다른 작품이 나온다.

“어느 집 앞마당 줄에 엮어 허공에 매달아 놓은 명태를 보고 사진으로 찍어 텍스트를 붙였죠. 명태의 꿈. 큰 바다를 헤엄치고 싶었지. 누가 하늘을 날고 싶다고 했던가. 느낌이 다르잖아요. 깊은 바다속을 누비고 다녀야 할 명태가 하늘을 난다는 건 죽음을 뜻하거든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한 편의 시 같다. 그가 말한다. 삶 자체가 낭만이고 인생이 시라고….

“개원의로 있을 때도 늘 색다른 의사가 되려고 노력했고 동료들이 하는 말도 ‘형은 의사같지 않다’고 했어요. 수염 기르지 머리 올백으로 넘기지 노래한다고 다니지 사진 찍는다고 다니고 사진 공모전해서 해마다 몇백만원씩 상금 탔지. 제가 생각해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주말이나 휴일 새벽 1~2시에 나가서 밤 11시 넘어서 돌아왔다는 그는 운전하면서 안 졸고 안 쉬고 강행군을 한다. 너무 시간이 아까우니까. 그런 그가 인생 2모작으로 17년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청진기를 집어던지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금이 행복하냐고? 그가 말한다.

“식당을 하는 지금은 몸도 마음도 편해졌어요. 그동안 손놨던 골프도 다시 시작했고 운동도 하고 자잘한 시간 내서 제가 꿈꿨던 시간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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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05일 08시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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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체 13/11/22 [21:56] 수정 삭제  
  어쩐지 병원 갔더니 안계시드라 ㄴㅁ
중천 13/11/23 [00:36] 수정 삭제  
  정말 멋진 인생입니다..... 부와 명예를 벗어 던지고....... 자기만의 이상과 고집을 향해 항해하는 ... 정말 감동적입니다....
소년의 여름 13/11/23 [09:02] 수정 삭제  
  저도 가덕도 숭어잡이 사진집 감명깊게 잘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
선미 13/11/23 [09:24] 수정 삭제  
  원장님~^^**멋지세요.ㅋㅋ 최고!!!
아사달 13/11/23 [19:18] 수정 삭제  
  멋지세요~~ 원하는데로 이루시길 바랍니다
청주 13/11/26 [08:29] 수정 삭제  
  정말 부럽소. 언제 식당을 열었지? 사진관련 기사얻으러 청주간지가 어제같은데. 그좋은 카페 분위기의 진료실을 떠났었네.. 언제 천안가면 한번 들러야겠네 같이 골프치러다닌지도 벌써 10년이 넘었고.. 이제는 공주에서 업무에 엮여서 정신도 없고 동창최 총무 그만두면 한가할 줄 알았는데... 정말 부러우이 ...
나나 13/11/26 [14:18] 수정 삭제  
  인생을 즐길 줄 아시는 분이시네요..멋지세용 ^^
이강산 14/04/06 [18:57] 수정 삭제  
  신통방통의 이강산입니다.

이제 신통방통을 접고 소풍이란 이름으로 4월 7일(월) 다시 태어납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단품으로 엮어 누구나 부담없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어깨에 힘을 뺐습니다.

무엇보다 건강에 도움이 되도록 들깨시락국과 한우 국시국밥을 맛있게 준비하고 아침 6시부터 차리게 됩니다.

비만이나 변비 또 대장암 등의 예방효과를 위해 시래기를 아낌없이 쓰고 인공조미료를 안쓰며 고혈압의 주범인 나트륨 함량을 줄여 너무 짜거나 맵지 않으면서도 정겨움을 잃지 않도록 배려하여 건강밥상의 본질을 구현하려 애썼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던 소중한 메뉴들, 한번 맛보러 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41-567-5233

충남 천안시 동남구 구룡동 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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