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클릭이사람](41) 한국판 포레스트검프 김홍영이 뛴다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2000/06/09 [18:06]

[클릭이사람](41) 한국판 포레스트검프 김홍영이 뛴다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 김홍영(51)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세계일주 마라톤 20020km 대장정 길에 올라 달리고 있다. 2002 월드컵축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홍보가 뛰는 목적이다.

▲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착후 화동으로부터 환영꽃다발을 받고 잠시 포즈를 취한 김홍영.     © 피플코리아

알고보면 갈비집을 운영하는 평범한 시민. 달려야 직성이 풀리는 그가 마침내 생업마저 접어두고 민간사절로 나서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지난 2000년 1월 1일 칠레 산티아고 국립경기장을 출발하여 5월20일(140일)에 칠레-아르헨티나-우르과이-브라질을 잇는 3천840km의 남미대륙 횡단을 완주하였다. 남미투어를 마치고 잠시 귀국하여 훈련중이다. 이달중 다시 출국하여 북미대륙 5천km 횡단에 나선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삶을 관통하며 뼈대처럼 지지해주는 신념이나 삶의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 달리기는 곧 삶이다.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몸에 이상이 올정도로 삶을 지지해주는 뼈대이다.

50대의 나이로 세계 마라톤투어에 나선 이유도 도전에는 나이가 장애물이 될수 없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마라톤을 통해 한국인 특유의 의지와 투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한다.

2002 월드컵에 대한 범 국민적 관심을 표명하고 IMF로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다시 일어설수 있다는 희망과 꿈을 가지고 새 시대를 향해 함께 뛰어 가고 싶다.

2002년 월드컵이 우리나라만의 축제가 아닌 새천년의 문을 여는 세계인의 축제 한마당이 될 수 있도록 몸으로 홍보해 보자는 사명감을 가지고 달린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꿈의 씨앗을 품고 살아간다. 그 씨앗을 가꾸고 싹을 틔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슴에 묻어둔 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도 처음엔 그랬다. 세계 곳곳을 마음껏 달려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간직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가슴속에만 묻어둘수가 없었다. 그싹을 키워나가기로 했다.

미국에 건너가 일식점을 운영하던 지난 96년. 바쁜 생활 핑계로 운동을 쉬는 동안 체중이 불어 있었다.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잠시 중단했던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몸이 만들어지자 뛰는 거리를 조금씩 늘렸다. 97년 8월부터 1년동안 매일 10∼15㎞ 를 달렸다. 마라톤으로 세계일주를 해야 겠다는 꿈도 바로 이때 세웠다. 자신의 인생을 지켜준 달리기를 통해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곧바로 귀국했다. 한국에 오자마자 훈련에 들어갔다. 지난해 3월까지 산악과 도로를 매일 30㎞씩 달렸다. 점차 자신의 몸에 맞는 주법도 터득했다. 한때 76㎏이나 나가던 몸무게가 3년새 58㎏으로 줄어들었다. 체중이 빠진 대신 심폐기능은 더욱 좋아져 강인한 마라토너로 변해갔다.

'단독 마라톤 투어’로 자신의 의지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첫 출발점으로 서울 천안 추풍령 김천 대구 부산간의 마라톤 완주를 택했다.

총 500km 거리의 완주… 언젠가는 이뤄야 할 꿈이었지만 성공을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족에게 조차 사실을 숨긴채 잠깐 다녀오겠다는 말만을 남기고 외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1999년 3월 22일 서울 광화문을 출발한 그는 매일 오전 15km 그리고 오후에 20km를 달린다. 먼길을 함께 할 동반자도 없었다. 길을 안내해 줄 사람도 없었다. 단지 그 혼자만의 외로운 도전이요 싸움이었다.

당일 목적지까지 짐을 옮겨다 놓고 다시 출발지로 돌아와 달리기를 여러날… 터질 듯한 가슴과 다리의 통증 때문에 중도에 포기를 하고 싶었던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의 건강을 염려한 가족들의 외압은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마라톤을 시작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그의 부인은 여비를 넣어둔 그의 통장에서 돈을 몽땅 빼내 버렸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무모한 도전을 막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의지를 꺾을수는 없었다. 가슴과 등에 'For the peace of the World(세계 평화를 위해)' 슬로건을 붙인 채 달렸다. 4월 6일. 출발 16일만에 그는 마침내 부산역 광장에 도착한다. 총 500km 거리를 무사히 완주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싸움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일 뿐이다. 웬만한 투지와 노력 없이는 쉽사리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그의 곁을 떠나지 않던 기관지염… 그 끈질긴 병과 싸우기 위해 그는 매일 4∼10km를 달렸다. 그리고 30세쯤 지병이 말끔히 나은 뒤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달리기는 모든 일에 자신이 없던 그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심어 주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남은 인생에 뭔가 보람된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그는 국내 마라톤 완주에 이어 이번엔 세계일주 마라톤을 꿈꾸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꿈의 실현을 위해 부인과 세 딸의 만류를 뿌리치고 1999년 5월 13일 부산항 국제 여객선 터미널에서 일본 시모노세키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5월 15일 일본 시모노세키항을 출발한 그는 곧바로 히로시마 오사카 나고야를 거쳐 종착지인 도쿄까지 총 1천200km 종단 마라톤 투어에 들어간다. 마라톤 방식은 한국에서와 동일하게 이루어졌다.

당일 목적지까지 대중 교통편을 이용해 짐을 운반한 뒤 다시 출발지로 돌아와 매일 30∼40km를 달려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비자 기간 만료로 두차례 한국에 들렀다 나간 기간을 빼고는 매일 달렸다. 고온다습한 기후와 산악 지형이 많은 탓에 시작 일주일만에 발톱 두 개가 빠지고 몸무게도 7kg이나 줄어들 만큼 힘들었다. 달리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계속해서 자신과의 싸움을 펼쳐 나갔다. 여전히 그의 곁에는 고통을 함께 할 동반자도 없었다. 힘겨움을 덜어줄 그 누구도 없었다. 오로지 달리고 또 달렸다. 포레스트 검프가 그랬듯이…

달리는데는 무슨 특별한 이익이나 계산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뭐라도 할 수 있다는 도전 정신과 함께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할 뿐이었다.

마침내 28일간의 일본 종단 마라톤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3년동안 마라토너로서의 체중조절에 성공했다. 고산지대 적응훈련과 두차례의 실전투어를 하면서 세계투어에 어느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또다시 꿈의 실현에 도전한다. 세계일주 마라톤 세부계획이 세워졌다. 이번에도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의 고집을 꺾을수는 없었다. 결국 가족들은 음식점은 알아서 할테니 꼭 성공해서 돌아오라고 격려까지 해줬다.

한국체대 김복주 교수의 3개월 마무리 집중훈련을 받았다. 산악 고원지역 무더위 이상기후 등 최악의 조건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혹독한 강화훈련과 철저한 체력관리로 다져진 몸을 이끌고 긴 여정에 들어갔다.

세계일주 마라톤 투어로 이어져 여기까지 왔다. 전세계 32개국에 걸쳐 하루에 40㎞안팎을 뛰어야 하는 강행군. 코스 역시 해발 3천m의 고지대를 포함해 험준산령을 넘어야 한다. 대설 폭풍 폭우 등 악천후와 무더위 또는 영하의 혹한에서도 달려야 하는 고난의 연속이다.

투어하는 자체보다 경주외적인 면에서 더 힘들때도 많다. 계속 자동차도로의 갓길을 달리다 보니 항상 사고위험을 안고 있다. 생명을 담보로 뛰는 기분이다. 경찰이 에스코트를 해주지만 아찔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도 주변에서 성원해주는 모든 분들. 교민이나 현주민들이 있기에 달릴 힘을 얻는다. 지금까지 4천km 가까이 뛰면서 지원차량이 계속 고장이 나는 바람에 애를 먹기도 했다.

지원차량이 툭하면 고장날 정도로 지형이나 기후가 악조건이었으니 정작 뛰는 당사자는 오죽 힘들었을까…

그가 세계일주 마라톤 투어를 할수 있는 비결은 철저한 체력관리와 식이요법. 매일 4∼5시간 뛴다는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라고 할수 있다. 인간의 한계라는 마라톤을 2년반동안 매일 해내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하고 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스스로 사서하는 고생길이다.

그의 인물소개와 세계일주 대장정을 준비해온 과정 등을 담은 홈페이지(www.20k20.com)가 개설돼 있다. 그가 통과하는 마라톤 투어구간 지역이나 국가별 경기소식 그리고 마라톤 완주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등도 동영상과 함께 제공한다.

또한 이 사이트에서는 2002년 월드컵을 기다리는 전세계 축구팬들을 위해 한국의 음식 교통 숙박 문화도 함께 알리고 있다.

그는 남미 대륙을 횡단하면서 월드컵 축구의 홍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처음 뛸때만 해도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하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사실쯤은 누구라도 알고 있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외국에서 만난 사람들의 대부분이 2002월드컵 개최국은 오직 일본으로만 알고 있었다. 한일 공동월드컵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사람이라도 더 홍보를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불같이 일어났다.

그리고 또한가지. 서방에서는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는 타율적 운동보다 민간인이 자발적으로 펼치는 홍보운동의 가치를 훨씬 더 높이 산다는 사실을 알았다. 월드컵 홍보에 한몫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힘이 솟는다.

마라톤 한번만 뛰어도 체중이 4kg나 빠진다는데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는 그의 육체적 소모는 말해 무엇하랴.

그는 하루 10시간이상을 스트레칭으로 뭉친근육을 푼다. 밥을 먹으면서도 몸을 푼다. 장기간이 걸리는 마라톤투어를 하려면 의사와 영양사 그리고 마사지사가 의무적으로 따라붙는다.

그런데 그는 오직 혼자 해결한다. 스스로 침을 놓고 마사지 하고 음식을 해결한다. 불굴의 정신력과 기필코 해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없으면 감히 꿈도 못꿀 일이다.

50대의 보통사람이라면 몇km만 뛰어도 숨이 헉헉막힐 나이. 하지만 그는 뛴다. 몇km가 아닌 20020km를. 오직 그이기에 가능한 도전이다.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린다는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

모두가 들떠 있던 새천년 첫날 지구 반대편 칠레에서 대장정길에 나선 김홍영. 50대의 슈퍼 러너가 꿈을 안고 달린다. 그의 20020km 대장정은 2002년 6월1일 막을 내린다.

남미 칠레를 시작으로 남아공 호주 중동 유럽 북미 일본에 이어 제주도 광주 부산 대구 대전 등을 달린 뒤 월드컵대회 개최에 맞춰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날이 오면 월드컵 분위기로 후끈 달아오른 조국에 그가 세계의 지구촌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온다. 월드컵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그는 다시 갈비집(33갈비)을 운영하는 평범한 남자로 돌아갈 생각이다.

* 이 기사는 인물뉴스닷컴의 허락 없이 그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 전재나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인물뉴스닷컴에 실리는 모든 기사의 저작권은 오직 인물뉴스닷컴에 있습니다.

<
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people365@korea.com>

2000/06/09 18:06

인물뉴스닷컴 홈으로 바로가기     클릭이사람 명단 1~345번  
 

인물 인터뷰 전문기자 김명수의 클릭이사람 취재는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좋은 분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e메일 people365@korea.com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00/06/09 [18:06]  최종편집: ⓒ 인물뉴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