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474) 세계여자프로복싱 4대기구 통합챔피언 '복싱 여제' 김주희

김명수기자 | 입력 : 2011/05/20 [08:37]
[클릭이사람] (474) 세계여자프로복싱 4대기구 통합챔피언 '복싱 여제' 김주희

14살에 국내 1호 여성 프로복서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더니 18살에는 세계 최연소 여자복싱 챔피언에 올랐다.

▲     © 김명수기자
한국이 낳은 불세출의 복싱 여제(女帝) 김 주희(25) 선수는 그 어떤 수식어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여자 프로복싱 사상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세계 6대 기구 전·현직 챔피언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여자프로복싱에서 2010년은 주먹 하나로 천하를 휘어잡은 김 주희의 해였다. 세계여자프로복싱 4대 기구 통합챔피언에 올랐고, 여자국제복싱협회(WIBA) 2년 연속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2010년 9월12일 열린 필리핀 나가와 선수와의 라이트플라이급 4대 기구 통합 타이틀 방어전 및 세계복싱연맹(WBF)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극적인 판정승으로 여자국제복싱협회(WIBA), 여자국제복싱연맹(WIBF), GBU 등 4대 기구 통합 챔피언이 됐다.

이날 경기에서 김 주희 선수는 광대뼈 부위가 혹처럼 부어올라 왼쪽 눈이 보이지 않는 큰 부상을 입고도 끝까지 투혼을 발휘하여 명승부를 펼치는 감동 드라마를 연출했다.

4라운드 종료 공 소리가 울렸을 때 김 주희 선수는 왼쪽 눈이 전혀 안 보였다. 앞으로 6라운드를 남긴 상태에서 죽더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링에 오를 때마다 상대 선수에 돌진했다.

왼쪽 눈은 혹처럼 부어올라 형체가 없어졌고 눈, 코, 입에서 핏물이 흘렀다. 극적인 판정승으로 챔피언 벨트를 안은 김 주희 선수는 땀과 피로 범벅된 만신창이 얼굴로 승리의 기쁨을 표현하는 미소를 날려 숨죽이며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가 흘린 땀과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준 그날의 미소는 천 마디 말보다도 더욱 많은 의미를 지닌 백만불짜리 미소였다.

이날 승리로 4대 기구 통합 챔피언에 오른 김 주희 선수는 2004년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2007년 세계복싱협회(WBA) 챔피언에 올랐다가 반납한 타이틀까지 포함하면 6대 기구 챔피언을 석권한 셈이다.

통합 챔피언에 오르고 8개월이 지나서 그가 소속된 서울 문래동 거인체육관(관장 정문호)으로 찾아가 기자가 만난 김 주희 선수의 얼굴은 깨끗하고 맑은 '얼짱 복서'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정 문호 관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     © 김명수기자
“김 주희 선수 굉장히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예요. 말도 잘하고…. 그러나 복서로서 원래 타고난 재능은 없어요. 철저한 노력형이죠. 김 주희 선수를 지도하다 보면 답답할 때가 많아요. 바로 바로 못 알아들어서…. 어떻게 보면 그게 장점일거예요. 그래서 더 노력하니까…. ”

김 주희 선수는 선행도 세계 챔피언감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매년 지속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많이 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500원 동전 하나 가지고 벌벌 떨면서도 남을 돕는 일이라면 100만원도 아까워하지 않는 천사의 마음을 지녔다.

그렇다고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IMF 당시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소녀가장으로 영세민 소형 임대아파트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

정 문호 관장의 말을 빌리면 김 주희 선수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언니가 일등공신이다. 권투도 언니 권유로 시작했다.

화려한 경력의 보유자지만 돌아보면 역경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스폰서를 못 구해 방어전이 미뤄지는 수난도 여러차례 겪었다. 하지만 시련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을 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정 문호 관장은 김 주희 선수를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발굴해서 지금까지 지도를 해오고 있다. 정 관장이 말하는 김 주희 선수의 가장 큰 특기는 성실함이다.

“중 1 때 운동을 시작한 이후 12년 동안 죽도록 아파서 한두 번 못 나온 거 말고는 하루도 안 빠지고 나왔어요.”

정 문호 관장과 5분 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에 김 주희 선수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그녀가 던진 첫 마디는 “늦어서 죄송해요.”였다. 정 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자연스럽게 김 주희 선수가 말을 이어나갔다.

“나가와 선수와 가진 4대 기구 통합 챔피언 타이틀전에서 입은 얼굴부상 회복에 두 달 걸렸어요. 원래 제 피부가 하얗고 얇아서 살짝만 스쳐도 잘 붓거든요.”

4대 기구 통합 타이틀 매치 이전에 치른 3번의 시합에서 김 주희는 모두 KO승으로 이겼다. 그 때는 얼굴에 상처 하나 없었다.

▲     © 김명수기자
시합을 여러 번 했어도 얼굴이 너무 깨끗하니까 시합을 안 한줄 알고 주변에서 시합 언제 하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러다가 2010년 9월 4대 기구 통합 타이틀전에서 얼굴에 큰 부상을 입어 경기를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철렁하게 했다.

“시합이 끝나고 며칠 지나서 추석이었어요. 얼굴에 입은 상처가 너무 깊어서 본래 얼굴이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굳어버릴까 봐 겁이 났어요. 눈 주변 붓기와 붉은 멍 자욱이 얼굴 전체로 펴지는 거예요.”

직업이 권투라서 웬만한 상처는 별로 걱정을 안 했지만 그 때는 워낙 크게 다쳐서 걱정이 되더라고 고백한다.

“그런데도 기분은 좋았어요. 스폰서가 안 잡히고 시합이 연기되는 등 마음고생이 심했거든요. 그런 우여곡절 끝에 맞이한 경기가 끝나고 기분이 좋아 라커룸에서 웃음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어떤 시합을 하더라도 아쉬움은 남지만 그 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을 정도로 최후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경기였다.

“혹시 판정에 지더라도 후회없이 싸운 시합이다 싶어서 활짝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권투선수로서 처음으로 쾌감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이전 시합은 체력이 그토록 완전 고갈 되지는 않았어요. 그날은 젖 먹던 힘까지 완전히 올인 했거든요.”

통합 챔피언 여부를 떠나서 권투선수로 큰 부상을 당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경기를 끌고 가서 기분이 좋았다는 김 주희 선수의 말에서 진정한 프로정신을 읽을 수 있다.

“링닥터가 시합 중간에 두 번(6, 7라운드)이나 제 의사를 물어봤어요. 그때 제가 분명히 말했어요. 절대 포기는 없으니까 게임을 중단시키면 가만히 안 있겠다고 했어요.”

나가와와의 시합 이후 많은 사람들이 김 주희의 만신창이 얼굴에 감겨버린 눈과 웃음을 기억했다. 김 주희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고,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이 쏟아졌다.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강연도 했다.

“나이도 한참 어린 제가 몇 백 명이 모인 고위 공직자 앞에서 강의를 한다는 부담감에 전날 걱정을 많이 했어요. 굉장히 떨리는 자리에서 두 시간 강의를 원고 없이 했어요. 그런데 두 시간이 단 몇 분처럼 지나갔어요. 반응도 좋았고요.”

▲     © 김명수기자
현재도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지만 김 주희 선수는 권투에 전념하기로 했다. 권투가 그녀 인생의 전부이자 본업이기 때문이다.

요즘 김 주희 선수는 챔피언에 오르기보다 타이틀을 유지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걸 실감한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이미 제 전력이 완전히 노출된 상태라서 막상 시합을 하면 제가 불리하죠. 제가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도전자가 연구를 철저히 하거든요.”

통합 챔피언에 오른 김 주희 선수의 장점이 뭐냐고 묻자 그런거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장점은 커녕 김 주희 선수는 스스로 재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저는 일반 여자보다 몸집이 작고 몸도 뼈도 약해서 어렸을 때부터 안 아픈 곳이 없어요. 체력이 너무 약하고 핸디캡이라는 핸디캡은 다 가지고 있어요. 복서로서 타고난 재질도 아니고….”

게다가 프로 초보 선수보다도 이해력이 부족해서 관장이 말하면 다른 선수들은 한 번에 알아듣지만 그녀는 백번을 말해도 잘 못 알아듣는다고 실토한다.

“저는 처음부터 모르니까 알 때까지 백번 천 번 연습해요. 한 번에 알아들은 사람은 나중에 까먹어요. 그러나 저는 자연스럽게 운동량이 많아지면서 너무나 힘들게 알아지다 보니까 몸에 저절로 배어 버렸어요.”

그를 지도한 정 문호 관장은 오히려 그런 부족한 부분이 현재의 김 주희를 만든 최고의 장점이라고 본다.

“타고난 재질은 없지만 관장님한테 12년 배우면서 아예 못 일어나서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심하게 아플 때 한두 번 빼고는 하루도 안 빠지고 도장에 나와서 운동을 했어요.”

체육관에 나와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을 정도로 지독한 연습벌레다.

2004년 12월 19일 세계 최연소 챔피언에 오른 이후 6년 넘게 계속 타이틀을 추가하면서 작게 크게 도와준 많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그는 항상 잊지 않고 있다.

“경기가 끝나면 제자의 운동화까지 손수 빨며 챙겨주신 관장님을 비롯하여 오늘의 제가 있게 해주신 그 분들의 은혜를 갚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죽을 때까지 다 갚을 수 없어요.”

그래서 그는 이제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뒤를 이을 후배들이 비인기 종목(여자프로권투)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한다.

“오는 7월에 있을 4대 기구 통합챔피언 지명 방어전이 지금은 급해요. 개인적으로는 공부를 계속하고 있고요. 중부 대학원 교육학 전공 3학기 이수중입니다.”

권투 선수하면 아직도 ‘무식하다, 잔인하다, 못사는 친구들이 하는 운동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가 그런 편견을 깨고 싶어요. 권투도 굉장히 몸에 좋은 유산소 운동이거든요. 권투가 얼마나 괜찮은 운동인지 알리고 싶어요. 권투가 좋다고 말만 해가지고는 안 되더라고요.”

그가 권투선수로서 개인적으로 시합을 열심히 해서 관중들을 끌어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강의를 통해서 어필하고 싶어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제가 강의 중에도 권투가 얼마나 괜찮은 종목인가 열심히 설명해요. 그럼 제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공감해주면서 ‘권투 정말 괜찮은 운동이네요.’그렇게 말해줄 때 가장 기뻐요.”

부모의 이혼, 지독한 가난, 끝없이 이어지는 부상 속에서도 차례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여 오늘에 이른 김 주희 선수.

오직 복싱 하나만 보고 달려온 그의 이야기는 자서전으로 엮어 출간될 예정이다. 책에는 끊임없이 도전하는 김 주희의 감동 스토리가 담긴다.

“앞으로 바람은 세계여자 복싱 7대 기구 중에 마지막 하나 남은 WBC(세계복싱평의회) 타이틀까지 따서 남녀 최초로 그랜드 슬램을 이루고 싶어요.”

그랜드 슬램을 이루기 위해 김 주희 선수는 매일 피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복싱은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다음 시합에는 저를 성원해 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더욱 화끈한 경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기가 무섭게 김 주희 선수는 이제 마지막 하나 남은 WBC까지 거머쥐어 7대 기구 타이틀을 모두 석권 그랜드슬램을 이루는 그날을 위해 열심히 뛰겠다며 훈련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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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5월20일 08시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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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11/05/30 [10:22] 수정 삭제  
  대단한 기록을 가진 여성복서
힘내시고
멋진 역사를 쌓아올리십시다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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