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471) ‘앙드레김’ 유니폼이 어울리는 여성 버스기사 임춘열

[클릭이사람] (471) ‘앙드레김’ 유니폼이 어울리는 여성 버스기사 임춘열

모범운전 여기사님 버스 몰고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앙드레김이 디자인한 유니폼이 어울리는 여자! 서울 강변~ 덕소 구간을 운행하는 KD운송그룹 경기고속 15번 버스기사 임춘열(56). 15번 기사 30명 중에 홍일점으로 단연 그가 눈에 띈다.

▲     © 피플코리아

KD그룹 전체 버스기사 8000명 중에 여성 기사는 140명으로 2%가 채 안 된다. 그 중에 한 명이 임 춘열 기사다. 1명 충원할 때 100명이 몰려올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결혼해서 전업주부로 살다가 문뜩 내 나이(45)에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45세 때 ‘50이 되면 너(50)를 취업해서 맞이하마.’ 생각했어요. 그 때부터 내가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니까 바로 운전이더라고요.”

그는 전업주부에서 버스기사로 인생 유턴을 결심하고 2003년 1월 대형 1종 면허에 도전하여 한 번에 땄다. 버스회사 취직하여 60까지 일하고 정년퇴직하면 개인택시 뽑아 70까지 일하겠다고 쉽게 생각했다.

쇠뿔도 단 김에 빼라고 면허 딴 지 두 달 후인 2003년 3월부터 마을버스 14개월 몰다가 2005년 7월 KD운송그룹에 입사하여 2006년 12월 19일부터 지금까지 15번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15번 버스기사 30명 중에서 여성은 딱 저 1 명으로 동료기사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오늘의 제가 있다고 봐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승용차만 몰다가 겁 없이 회사에 들어와 큰 차를 운전하면서 초반에 실수가 많았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기사다.

“버스를 몰면서 서민층을 많이 접했어요. 서민들이 대중교통 이용하잖아요. 서민들은 물질적 여유가 없어서 그런지 작은 삶에 만족하고 단순해서 행복 찾기가 쉬운 것 같아요. 나도 나이를 먹으면 저런 분들처럼 살아야겠다고 배워요. 마음 비우고 서민으로 산다는 게 좋아요.”

15번 버스를 몰면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뿌듯할 때도 많았다는 그는 최근에 있었던 사연을 소개했다.

“단골 승객이 KD그룹 인터넷에 저를 친절 사원으로 추천하는 글을 익명으로 올렸어요. 그런데 사내 직원이 답글로‘늘 친절사원으로 오르는 분’이라고 쓴 글을 보고 더 기분이 좋았어요.”

“여자 직업은 아니라고 봐요. 가사일과 병행하려면 슈퍼우먼이 돼야 하잖아요. 그런데 도전해볼만한 매력은 있지요. 하루는 16시간 운전하고 다음날 하루는 쉬는 1일 1교대 근무체제로 계속 돌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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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차도 아니고 대형 버스를 장시간 운전하면 체력소모가 엄청나다.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웬만한 남자도 오래 버티기 힘든 직업이다.

누구보다도 그 문제를 잘 아는 그는 꾸준한 생활체육으로 왕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 때 배구부 주전 세터이자 선수주장을 맡기도 했으며 배드민턴도 수준급으로 지금도 체력은 국력이라는 신조로 쉬는 날 오전에는 운동을 한다. 사내 산악회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버스운전을 아무나 하는 직업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서비스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어야 하고 치열한 경쟁 속 자기만의 독특한 친절 서비스가 필요하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로 질 좋은 서비스를 하면 승객들이 평가한다.

“승객이 타면 ‘안녕하세요.’ 하고 반갑게 인사해요. 의외로 단골이 많거든요. 가장 졸리고 승객이 적은 오전 11시 ~ 오후 2시 점심시간대에는 단골 승객들과 짤막한 대화를 나눕니다.”

그 나름대로 졸음을 방지하는 노하우다. 유머 섞인 이야기를 건네면 승객들 또한 친근감을 느끼며 다가온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

버스를 몰면서 겪는 해프닝도 많다. 하루는 출근시간대에 직진에서 좌회전으로 신호가 바뀌면서 경찰이 버스를 세웠다.

“그래서 그랬어요. ‘나으리! 지금 이 상황에서 세울 수가 없습니다. 승객이 초만원이라 급정거하면 한 쪽으로 쏠리잖아요. 넘어지면 다치거든요. 그래도 경찰이 딱지를 끊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그녀가 몰던 15번 버스에서 하차한 남자승객 두 명이 다시 와서 경찰관에게 말했다.

“‘저 여기사님은 철저히 안전운전하시는 분입니다. 절대로 교통 위반할 분이 아닙니다. 이번 상황은 승객들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입니다.’ 그렇게 제 편을 들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승객들한테 덕을 많이 보는 구나 생각했죠.”

그가 경찰과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버스에서 내린 승객이 먼발치에서 보고는 되돌아와서 그렇게 두둔해 주는 바람에 그는 사태를 쉽게 해결할 수가 있었다.

“저는 이 직업이 적성이 딱 맞아요. 원래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제 버스에 타고 내리는 승객이 하루에 500명이나 돼요. 그 많은 분들에게 제가 먼저 인사해요. 승객이 먼저 저에게 인사할 때도 있고요. 그럴 때 뿌듯하죠.”

인사 안하는 학생이 어쩌다 있으면 돌려서 말한다는 그녀의 재치가 익살스럽다. ‘인사 잘하는 분은 저렇게 예뻐.’ 그러면 그 학생은 다음에 반드시 먼저 인사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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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이 저보고 일을 즐기는 것 같다고 해요. 직장에 만족하고 행복해요. 저는 회사에서 제가 할 일도 다 못한다고 봐요.”

친절하면 임춘열이다. 그는 회사에서 시행하는 친절상(賞) 수상 단골로 2009년에는 한 해에 무려 4 번이나 친절상을 탔다.

“친절상 한 번 타면 금반지가 3돈이거든요. 2009년엔 친절상 부상으로 금반지만 12돈을 받았죠. 상금보다도 친절상을 탔다는 자체로 뿌듯하고 기분이 좋죠.”

그는 친절상 제도가 개인에서 팀제로 작년에 바뀌었다면서 자신이 더 친절해서 그가 속한 A팀이 올해 꼭 친절상을 타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마을버스에서 저와 같이 일하던 여성 기사 4명이 KD그룹으로 함께 왔어요. 그런데 지금 저 한명 남았어요. 처음에는 그만둘 생각도 했어요. 지금은 아닙니다. 작년에 경기고속 여성기사 정년퇴직 1호가 나왔다고 해요. 저 역시 정년까지 가야죠.”

그에게도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입사해서 1년이 다 돼 가던 날 교통사고를 냈다. 인사사고로 징계위원회까지 올라갔다. 입사 후 최대 위기였다. 그 때를 교훈 삼아 그 뒤로는 안전 운행을 생명처럼 여기고 있다.

“버스 기사로서 안전운전과 친절은 기본이죠. 겉치레 친절은 안 통해요. 승객이 먼저 알아보거든요. 저한테는 큰 회사가 적성에 맞아요. 규정만 잘 지키면 되니까.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정년 후 개인택시 뽑아서 70살까지 운전대를 잡을 계획입니다.”

그는 친절하기로 사내외에서 정평이 났다. 버스를 잘 못 탄 승객이 있으면 자세히 다른 버스를 안내한다.

그의 하루 일과를 보면 철인이 따로 없다. 서울 신내동 집에서 새벽 05시30까지 차고지인 덕소에 도착하여 덕소~강변을 8번 왕복 운행하고 마지막 버스가 차고지에 도착하는 23시30분쯤 근무가 끝난다. 그래도 그는 힘들기는커녕 버스 운전이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집에 있을 때는 내가 찌들어갔어요. 버스를 몰면서 집에 있을 때 찌들어가는 때가 모두 없어지고 순간 판단력과 암기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제가 느껴요. 제 남편하고 초등학교 동창인데 남편은 할아버지 같고 나는 청춘 같아요.”

자신한테는 소심하고 남한테는 관대한 성격이라고 스스로를 진단한다. 버스 운전하면서 일부러 주머니에 1000원짜리 지폐 몇 장을 넣어가지고 다니는 여자. 이유가 있다.

5남매에 엄마아빠와 할머니가 한 집에 사는 초중학생 형제가 안쓰러워 1000원을 손에 쥐어주는가 하면 중학교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빵, 우유 사먹으라고 5000원을 준적도 있다.

밤늦은 시간에 올라탄 승객이 단말기에 접속한 버스카드에서 잔액 부족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얼마가 부족한지 물어봐서 500원 있으면 어린이 요금 찍어주고 어린이처럼 얌전하게 앉아있다 내리라고 농담하여 승객을 편안하게 해준다. 800원 있으면 학생 요금으로 눌러주고…

“차마 내리라고 못하겠더라고요. 그런 경우가 하루에 한두 명씩 있어요. 아침에 학생이 탔다가 잔액 부족하면 뛰어내리려고 해요. 그럼 물어보고서 찍어줘요. 우리 회장님 알면 안 되는데… 봐주시겠죠.”

명절에는 스스로 자청해서 일하는 여자. 작년 명절에도 그랬고 지난 설에도 그는 버스를 몰았다. 남들이 쉬는 빨간 날 일하다 보니 이젠 적응이 됐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동료를 배려하는 마음이 진하게 묻어있다.

“15번 버스 기사님들 유난히 장남이 많더라고요. 제가 양보해야죠. 대신 명절 전날 시댁집안에 가서 음식 장만 다 해주고 와요.”

강변~ 덕소 구간을 한 번 왕복운행하면 1시간 50분 걸린다. 하루에 8번을 왕복해야 하니까 16시간을 꼬박 근무하는 꼴이다.

“남자 기사들은 우스개소리로 자기 마누라 절대로 버스 운전 안 시킨다고 해요. 너무 힘드니까. 하지만 저는 재밌어요. 힘든 줄 몰라요.”

아무리 늦어도 밤 10시 30분이면 취침에 들어가고 보통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는 완전 올뺌이 생활이다. 그런데도 그는 항상 웃는 얼굴에 유머가 넘친다.

“모든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데 저는 운전대를 잡은 이후 밤 문화가 없어졌어요. 그래도 저는 자화자찬하고 살아요. 제가 저를 막 띄우죠. 자칭 저는 왕비라고 해요. 그리고 내 차에 타는 승객들은 영부인, 대통령 급으로 모시죠. 제가 왕비니까 비슷하게 가야죠.”

인터뷰는 KD그룹 본사 4층 이 태규 이사가 동석한 자리에서 저녁 5시부터 2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는 자신의 승용차에 기자를 태우고 집 근처 환승역인 노원역까지 픽업해주는 친절을 보였다. 노원역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차안에서도 그는 계속 재치 있는 입담으로 기자를 즐겁게 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버스 운전이 즐겁고 적성에 딱 맞는 여자. 강변에서 덕소까지 그가 모는 15번 버스를 타면 승객도 즐겁고 정월 초하루처럼 사람을 좋아하는 그 또한 기분이 좋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변함없이 서민의 든든한 발이 되어주는 임 춘열 여성 버스기사. 당신은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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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11년 04월11일 09시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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