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135) 중국황제유물 전시 허해철

김명수기자 | 입력 : 2001/02/19 [20:03]

[클릭이사람] (135) 중국황제유물 전시 허해철

해림통상 허해철(48) 대표이사 집안은 유난히 중국과 인연이 깊다. 할아버지는 상해 임시정부에서 지하활동을 하셨다. 아버지는 상해 임정 중경지부 화북대표부 사회부에서 활동하다가 해방되면서 귀국선 타고 환국했다. 아버지 5형제중 4형제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고문으로 세상을 떴다는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할아버지도 일본헌병으로부터 고문을 당해 왼팔을 잃었다고 한다.

관련기사 · 동영상 보기 1 · 동영상 보기 2


허사장은 지금 중국황제유물전을 서울 63빌딩 특별 전시실에서 열고 있다. 국가도 해내지 못한 국보급 중국황제 유물의 서울 전시를 개인차원에서 유치했다는 자체만으로도 그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임을 알수 있다.

2000년 12월 22일 개막된 중국황제 유물전은 오는 3월 4일까지 계속된다. 중국이 자랑하는 5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역대 황실의 유물중 엑기스만 골라서 가지고 왔다고 한다.

중국 황제유물의 해외전시로는 최대규모로 모두 150여점이 선보인다. 63빌딩 특별 전시장에 가면 중국 황제의 유물을 만날수 있다.

보좌, 금관, 용포, 옥새, 장신구 그리고 문방사보가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황제의 손길이 가장 많이 닿았던 유품들이다. 중국 천하를 호령하던 황제는 사라지고 역사의 유물은 이렇게 남아서 우리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황제가 착용하던 갑옷과 보검, 말안장, 활과 화살 등은 청대의 숭무정신을 보여준다. 병기는 고대 권력의 원천이었다. 주인은 간데 없고 유품만 남았으니 이를 보고 있노라면 인생의 허무함이 진하게 느껴진다.

의상이나 장신구 등 일상 용품은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던 황실 생활의 흔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역사를 뛰어넘어 아직도 그들의 체온과 숨결이 살아 숨쉬는 착각을 느낀다.

공예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중국 고대 공예의 정화는 거의 황실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최고의 공예품들은 장인의 손을 빌어 중국인의 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서화는 기록의 의미를 넘어서서 당시 사람들의 정서까지 보여주는 유물이다. 특히 황실 기록화는 옛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된 또하나의 역사책인 셈이다.

전시회가 문을 열던날 중국의 5대 박물관의 관장들이 모두 이곳까지 와서 개막을 축하해 주었다.

유물 하나하나마다 사연이 담겨있다. 우리의 선조들이 조공으로 중국에 바쳤다는 조선시대 유물 등도 특별 전시된다.

황실기록화 '무관만홀조천도권' 이 특히 눈길을 끈다. 청나라때 문무백관중 한사람이 검은 비단천 위에 그린 그림으로 중국 고대역사 풍속화의 최대 걸작으로 꼽힌다.

길이 17M, 폭 56CM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무려 2천 7백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물 하나 하나마다 표정이 다 틀리다는 사실이다. 인물구성이 세밀하다.

건륭황제가 남방을 순시할때 갔던 소주 서쪽의 산천풍경과 시정풍속, 그리고 성대한 영접장면을 생동감있게 재현했다.

그림에 나오는 기와와 나무와 산등에 유난히 금색이 많다. 금색을 내기위해 실제로 붓에 금을 찍어서 그렸다고 한다. 금으로 그린 그림인 셈이다.

당현종과 양귀비가 하는 격구도 놀이를 붓으로 그리고 쓴 당명황격구도도 눈에 띈다. 송대 최대의 화가 이공린이 그린 그림이다. 황제와 황실 귀족들의 도장이 무려 97개나 이그림에 찍혀 있다.

대우치수비취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비취조각이라고 한다. 길이 83CM, 넓이 48CM, 높이 63CM로 무게가 자그마치 500KG이다. 이 옥조각은 우임금이 황화의 범람을 막기위해 거대한 공사를 벌였다는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공예품이다. 89년부터 10년에 걸쳐 그렸다고 한다. 보험료만 360억원이라니 가격은 상상에 맡기겠다.

이많은 유물을 어떻게 옮겨왔을까? 전시회에 참가한 5개 박물관에서 각각 4명의 전문가들이 파견되어 운반에서 전시장 세팅까지 직접 했다고 한다.

유물 하나하나마다 다 보험이 들어있음은 물론이다. 중국에서도 아끼는 국보급 황제유물인 만큼 자칫 전시중에 손실이나 도난이라도 당하면 한중간에 전쟁으로 비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이사장은 말한다. 그만큼 엄청난 일을 그가 하고 있다.

"배짱하나로 밀어부쳤습니다. 제가 원래 간덩이가 부었거든요. 간이 밖으로 튀어나왔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두둑한 배짱 역시 집안 내력인가 봅니다"

전시실 한쪽에서는 중국전통 황실 경극 '패왕별희'를 중국 배우가 와서 직접 공연하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중국의 공예가들이 직접 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풀잎공예가도 있다. 풀입으로 용, 봉황, 닭, 거북이등 동물과 잠자리, 사마귀, 여치, 나비 등 곤충을 즉석에서 만들어낸다. 꼭 살아 움직이는 진짜 동물 같다.

그는 자타가 알아주는 중국통이다. 중국에 관해서는 국내최고의 거물로 통한다. 개인자격으로 중국과 교류하여 담배와 원료의 수출입업무를 하고 있다. 중국 현지에 수산물 가공 공장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의 문화교류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해림통상과 해림엔터프라이즈라는 기업을 이끌어가는 경영자이면서 한중 민간 문화대사로 뛰고 있다. 중국에서 열린 한국문화주간 행사도 그가 산파역을 했다.

기업이던 국가던 중국 관계에서 어려움에 접하면 지금도 그를 찾는다. 국내 여러업체들이 중국과 무역을 잘할수 있도록 자문을 해주거나 중견기업의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의 성공이 있기까지는 남다른 열정과 노력이 있었다. 죽을 각오로 중국시장을 개척했다. 중국에 국산담배를 처음으로 수출하는 쾌거를 올려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인물이다. 한국담배 중국진출권을 따낸 당사자인 그는 정작 담배를 피지 않는 금연가란다.

창업 이전에도 무역회사 부사장으로 잘나갔다. 그러나 그는 중국에 매력을 느껴 과감하게 그 자리를 떠났다. 87년 해림통상을 창업했다.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기 이미 10년전에 혼자힘으로 중국시장을 뚫었다. 간첩으로 몰리는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는 중국시장을 계속 넓혀나갔다. 하늘의 별을 따는 만큼이나 어렵다는 중국 담배시장을 개척하는 놀라운 사업수완을 발휘한다. 95년 마침내 국산담배를 중국에 첫수출하는 개가를 올린다. 한중수교때도 그는 막후에서 큰 몫을 기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할아버지때부터 맺어온 중국과의 끈끈한 인맥은 그에게로 계속 이어져 내려온다. 지금도 그는 중국의 정재계 인물과 친분이 두텁다. 이번 중국 황제유물전도 이런 바탕위에서 성사 되었다.

중국의 2백만 동포가 향후 남북통일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는 한중 문화교류에 남다른 집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중국 상품전, 중국문화대전 등을 국내에서 열었다.

98년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100일간 중국문화대전을 열었다. 외국문화행사를 예술의 전당 전관에서 100일동안이나 한것은 그가 처음이다. IMF 등 불황여파로 협찬이 끊겨 18억이나 적자를 보았지만 그래도 보람은 컸다.

그는 중국을 수시로 다녀온다. 일이 있을 때마다 이웃집 드나들듯 방문한다. 많을때는 일년에 무려 30여차레나 다녀온적도 있다.

독립운동가 집안이라는 자부심이 남다르다. 자신의 사재를 털어가면서 까지 한중 문화교류에 매달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을 좋아했다. 철학서적에 탐닉하기도 했다. 방황을 일찍 한셈이다. 그를 따라 시를 쓰다가 진짜 시인이 된 친구도 있다. 그러나 일찌기 시를 좋아했던 그는 시인대신 사업가가 되었다. 여학생들로부터 특히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중이 제머리 못꺾는 다는 말이 있다. 그역시 그랬다. 친구들이 허사장몰래 친한친구 여동생과 다리를 놓아 준 것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36살에 결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 대학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중국 황제유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는 말한다. 우리가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자신을 되돌아볼수 있는 거울이요 앞으로 나아가는 가늠자이기 때문이라고…

중국의 역사는 특히 우리에게 인류가 지나온 길고 긴 발자취를 되돌아게 하는 좋은 거울이며 가늠자이다. 그래서 그는 중국 황제 유물전을 열고 있다. 중국 역사는 우리역사와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목숨걸고 독립운동한 곳도 바로 상해 임시정부가 아닌가…

그는 앞으로 한국문화엑스포를 중국에서 열 계획이다. 일본에서 한중문화소개 대형 전시회도 추진중이다. 한중일 합작으로 베세토 문화엑스포를 추진하고 있다.

전시회가 단지 문화를 보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고 그는 말한다. 과거 현재를 보고 그속에서 미래를 예측할수 있는 전시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전시회를 그가 만들어 나가고 있다. 지금 열리고 있는 중국 황제유물전도 그중의 일환이다. 중국 황제유물의 진수만 뽑아서 압축 시켜 놓은 전시회라는 느낌이 든다.

그는 중국에서 3대를 이어 쌓아온 신뢰와 인맥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계속 한·중 문화교류 사업을 선도하는 민간대사로 활동할 것이다.  

* 이 기사는 인물뉴스닷컴의 허락 없이 그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 전재나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인물뉴스닷컴에 실리는 모든 기사의 저작권은 오직 인물뉴스닷컴에 있습니다.

<
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people365@korea.com>


2001/02/19 10:20:24

 

인물뉴스닷컴 홈으로 바로가기     클릭이사람 명단 1~345번  
 

인물 인터뷰 전문기자 김명수의 클릭이사람 취재는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좋은 분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e메일 people365@korea.com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