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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684부대 훈련병 희생자 유가족들의 피끓는 절규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2004/04/11 [23:38]

실미도 684부대 훈련병 희생자 유가족들의 피끓는 절규

 

실미도 684 주석궁 폭파부대를 소재로 한 영화 실미도가 1천 2백만 관객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한국인의 4분의 1 이상이 이 영화를 본 셈이다.
 
실미도 영화가 국내 초유의 흥행 대박 신화를 기록하면서 전국에 거센 실미도 돌풍을 불러 일으키는 가운데 이 영화를 보고 숨죽여 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영화속의 주인공인 실미도 684부대 훈련병 유가족들이다.
 
주석궁 폭파를 목적으로 1968년 4월 창설되었다고 해서 684부대 또는 김일성 주석궁 폭파부대로 불리는 이 부대는 71년 8월 23일 죽도록 북파 훈련만 받던 24명의 훈련요원들이 청와대로 돌린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만들어만 놓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 3년 4개월이나 버려진 실미도 특수부대. 결국 그들이 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은 전적으로 국가에 책임이 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누구도 선뜻 나서는 사람없이 버려진 684부대. 쥐도 새도 모르게 사살하여 흔적도 없이 없애버리겠는 소리까지 소문으로 전해들은 이들 훈련병들은 마침내 끔찍한 최후의 날이 다가온다.
 
기왕에 죽을 몸이라면 자신들의 억울함을 하소연이나 하겠다며 실미도를 탈출하여 버스를 몰고 청와대로 돌진하다 대방동 로터리 유한양행 앞에서 이들을 저지하던 군경과 맞서다 수류탄 자폭으로 최후를 맞는다. 생존자 4명에게는 사형이 집행되고 이 사건은 철저하게 은폐되어 영원한 미궁에 빠지게 된다.
 
사건발생 3일후 당시 국방장관이 전격 사표를 냄으로써 이 사건은 의문을 가질 기회도 없이 종결된다.
 
사건이 터진지 34년이 지날 때까지 유가족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러던 중 지난 2004년 2월 7일 SBS 프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옥천 청년 7명이 한날 한시에 실미도 훈련병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살아 돌아오기만을 학수 고대하던 유가족들은 이 소식을 듣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듯 경악을 금치 못했다.
 
11일 기자가 만난 장명기 훈련병의 여동생 장명선씨는 "37년동안 단 한번도 큰오빠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사방 팔방에서 이름이 수없이 터져 나와 집안이 온통 초상집이 되었다"면서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렇게 보고 싶던 우리오빠가 저 세상 사람이 되어 이제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서러움에 잠을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 그리운 우리 오빠를 불러봅니다."
 
그 당시 8살이었다는 여동생 장명선씨는 오빠의 억울함을 푸는 길이라면 불섶이라도 뛰어들 각오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왜 엄마 아버지를 두고 영원히 못 오실 곳을 가셨는지, 누굴 믿고 가셨는지 당사자인 우리 오빠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출세해서 고향에 돌아오면 부모님들에게 효도하겠다고 갔지만 영원히 못 오시는 불귀의 객이 되어 구천을 떠돌고 계시니 이 분하고 억울함을 어떻게 갚아 주어야 될지 오빠 생각만 해도 눈물이 터져 나옵니다"
 
장씨는 실미도에 끌려간 옥천 청년 7명은 한동네에서 태어나 한동네에서 자란 초등학교 친구이자 의리로 뭉친 순수한 농촌청년이었다고 말한다.  
 
"보리밥만 먹던 가난했던 시절에 동생들은 줄줄이 태어나고 먹을 것은 없고 장남이라는 책임감에 큰돈 벌어오겠다며 부와 명예를 준다는 실미도행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우리 오빠 억울해서 어떡해요."
 
지금도 고향 옥천에 가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장명기씨는 전설적인 인물이며 머리는 뛰어나고 운동을 잘해 특히 씨름대회에 나가면 상을 휩쓸어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선배였다고 고향 사람들은 말한다.
 
또한 고향 사람들은 당시 실미도로 끌려간 7명의 청년들은 옥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모두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었다며 한꺼번에 훌륭한 인재 7명을 잃은 것을 크게 아쉬워했다. 
 
훈련병 희생자 유가족들은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죽어간 아들 형제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유가족 모임을 결성했다.
 
유가족 모임을 이끄는 이광석 대표(이광용 훈련병의 친형)는 왜 1968년 3월경에 머리 좋고 능력이 뛰어난 청년들을 가족 몰래 비밀리에 쥐도 새도 모르게 데려가 37년간 진실을 은폐하고 간첩으로 몰고 난동분자로 몰아 붙여가면서 시신을 가족들에게 전해주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국가가 가족 몰래 이들을 데려간 것은 유괴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유가족들은 분노한다. 또한 실미도 영화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털어놓는다.
 
실미도 사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처럼 영화 홍보를 해놓고 정작 내용은 훈련병들을 사형수 무기수 전과자로 몰아 1천만 관객들에게 훈련병과 유가족들을 두 번 죽인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기자는 이 사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시민들에게 즉석 인터뷰를 해보았다. 손님이 북적대는 대중 음식점과 시장통에서 실미도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훈련병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냐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90% 이상이 사형수 무기수들로 인식했다.
 
유가족들이 실미도 영화에 분노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유가족 모임은 이 사건에 대해 한맥영화사에 명예훼손죄를 물어 남은 영화 상영 가처분 신청과 민형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광석 훈련병 희생자 유가족 모임회 대표는 "최후 생존자 4명이 사형장에서 마지막하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 '대한민국 만세'와 애국가 '동해물과 백두산...'을 부르면서 최후를 마쳤고, 또한 16명의 자폭자도 조국을 위하는 충성심을 전달하려 나왔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 대표는 더불어 "국가는 이들의 충성심을 만천하에 알려 애국심에 불타는 그들의 정신을 국가관으로 정리하고 젊은이들의 표상으로 그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국가를 믿고 애국할 수 있는 진정한 명분을 주는 길이며 그들의 명예를 진정으로 회복하는 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기자는 앞으로 실미도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취재를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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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04년 04월11일 23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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