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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281) 평생을 자식의 왕따로 살아오신 어머니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2003/09/08 [15:52]

[클릭이사람] (281) 평생을 자식의 왕따로 살아오신 어머니    

어머니. 하늘이었습니다. 평생을 이 못난 자식 사랑에 몸 바쳐 오신 당신은 내게 하늘이었습니다. 아무리 짜증나고 힘들어도 제 앞에선 항상 웃어주시고 부족한건 늘 채워주시는 어머니는 언제나 축복 넘치는 산타이고 천사였습니다. 

분수도 모르고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끝없이 요구만 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이유를 물은 적이 없었습니다. 

달라면 달라는 대로 주고 해달라면 해달라는 대로 해주시는 요술방망이 같은 어머니였기에 나는 그냥 놔두지 않고 평생을 요구만 하며 힘들게 하였습니다.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작은 일조차도 어머니에게만 매달려왔습니다.     

한 없이 한 없이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요구만 해대면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것만 받아 챙기는 그런 못난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내게 언제나 시달림만 받아온 왕따이셨던 것이죠.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식이었건만 그런 자식으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시달리고 괴롭힘을 당해온 왕따 말입니다.  

어머니! 당신 몸 부서지는 줄 모르고 아들만 걱정하고 챙겨 오신 어머니! 

어찌 그리 바보같이 살아오셨습니까?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어머니 이제 일흔하고도 일곱 살이시니. 자식 손주 사랑받으며 편하게 지내실 만도 한데 아직도 그렇게 못난 자식이 눈에 밟혀 직접 챙겨주셔야 마음이 편하신지요.     

어머니는 힘들게 저를 낳으셨다지요. 위로는 형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 잃고 누나 낳고 또 누나 낳고 저를 낳았으니 어머니에겐 제가 하늘이 주신 보배요 축복이셨다지요. 

이를테면 아들만 알아주던 시절에 귀하게 얻은 큰집에 큰아들이었으니까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대를 이을 손주 녀석을 보물같이 귀여워해주시고 아껴주셨다지요.     

가족이 아니면 대를 이을 손주를 만지기는커녕 부정 탄다면서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셨다지요. 
 

그렇게 태어나서부터 온 식구로부터 지나치게 귀여움을 받으며 과보호 속에 자란 제가 어머니를 평생 힘들게 하는 못난 자식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제가 웃으면 좋아하셨고 제가 힘들면 힘이 되어주셨죠. 저는 어려서부터 유달리 까다롭고 몸이 약했지요. 

밥 먹을 때도 온갖 투정만 부리며 한번에 먹어본 적이 없지요. 반찬투정 쌀밥투정 심지어 숟가락 투정까지… 어머니를 괴롭히기 위해 작정하고 부리는 투정처럼 말입니다.     

모든 것을 들어주시는 어머니라는 것을 저는 어려서부터 너무 잘 알았으니까요. 왜 그때 단호하게 저를 야단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면 안 된다고 너 스스로 해결하라고 왜 혼을 내지 않고 모든 것을 들어주시기만 하셨습니까.

제가 어렸을 땐 저의 집이 대가족이었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큰누나 작은누나 저와 동생들 그리고 작은아버지 가족과 막내작은아버지 가족. 거기에 고모까지 함께 한집에서 살았죠.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대가족을 거느리고 사신 어머니 얼마나 힘이 들으셨습니까. 마당 넓고 식구가 많다고 하여 동네에서도 큰집으로 불리던 우리 집에 어머니는 맏며느리셨잖아요. 

15명이 넘는 대가족을 거느린 큰집에 맏며느리셨던 어머니의 고생은 말로는 이루 설명할 수가 없지요. 왜 어렵다고 말 한마디 못 하셨습니까? 

작은 아버지들은 오죽이나 별났습니까. 허구한 날 고주망태 술타령에 한량에 술주정에…  

어머니는 그래도 그런 대가족을 잘도 꾸려나가셨죠. 

어찌된 일인지 모든 사람들에게는 사사건건 부닥치기만 하는 작은아버지들도 어머니 말이라면 고양이 앞의 쥐처럼 순종을 하셨으니 도대체 어머니의 비결이 무엇인지 저는 지금도 궁금하기만 합니다.     

작은아버지뿐만이 아니었죠. 동네사람들이나 어머니를 아는 모든 사람들도 다른 사람과는 때로 싸우고 안 좋은 일이 많이 생기건만 어머니하고는 절대 그런 일이 없었으니까요. 

심지어 다른 사람이 말썽을 부리고 일이 생기면 그때마다 해결사는 늘 어머니이셨잖아요.     

어머니는 저한테만 요술방망이가 아니라 우리식구 아니 우리친척 우리 마을 전체의 요술방망이인 셈이셨죠. 그렇게 살아오신 어머니가 이제 너무 늙으셨습니다.   

 


어머니는 특히 기억력이 좋았지요. 제가 보고 겪어온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머리 좋은 천재였어요. 

한번 보고 들은 것은 절대로 잊어먹지 않았으니까요. 까다로운 돈거래 장부까지도 글로 남기지 않고 머리 속에 담고 생활하셨으니까요.     

어머니! 제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7㎞나 되는 먼 거리였잖아요. 약골이었던 제가 그 먼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어머니의 정성이었지요. 

저는 압니다. 학교가기 싫어서 뒷방에 숨어있으면 온갖 좋은 말로 어르고 달래서 학교까지 데리고 가곤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마다 어떻게 말 했는지 선생님은 저를 한번도 혼내지 않았으니 이것 또한 어머니의 요술방망이 덕분이라는 것을 저는 다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제가 다닌 중학교는 또 얼마나 멀었습니까. 집에서 학교까지 10㎞나 되었지요. 고개를 두 개나 넘고 개울을 두 개나 건너서 가는데 2시간 오는데 2시간이나 걸려 걸어 다녔잖아요. 

저는 저대로 그토록 먼 거리 걸어 다니느라고 힘이 들었지만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제 새벽밥 해주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새벽밥 못 먹고 갈까봐 아예 초저녁부터 잠을 한숨도 안자고 그냥 새벽까지 바느질 하시면서 꼬박 새우셨잖아요. 

그러다 새벽이 되어 저를 밥 먹여 학교 보내놓고 나서야 눈을 붙이셨잖아요. 그러면 또 하루일과가 시작되니 도대체 하루에 잘해야 한 두 시간 주무시고 살아오셨을 어머니! 


그때부터 어머니는 불면증에 시달리셨지요. 제가 중학교 다니는 동안 어머니가 하신 고생은 저보다 몇 배나 더하신 셈이지요. 

결국은 제가 중학교를 무사히 다닌 것도 다 어머니 정성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중학교 들어가는 것을 결사반대하셨지요. 

할아버지께서 부잣집도 자식 중학교 보내면 논밭 다 팔아야 가르칠 수 있는데 없는 우리살림에 무슨 재주로 학비 댈 수 있느냐며 아래동네 훈장한테 보내서 한문이나 배우게 하라고 하셨지요.     

그 당시에는 집에서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바로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법이었죠. 

그렇게 엄한 할아버지께서 저를 중학교 가지 못하게 결사반대 하시는 것을 어머니는 설득하셨죠. 

어머니가 중학교 학비 벌어서 다 댈 테니 걱정 마시라고 하면서 결국은 할아버지를 승복시켰지요. 

할아버지께서도 어머니의 그토록 끝없는 자식사랑에 두 손을 드신 것이죠.     

하여튼 저는 그런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를 무사히 졸업했죠. 그런데 어머니 그때 중학교 등록금이라고 해봤자 1천원안팎이었는데 왜 우리 동네서 중학생이 저 하나밖에 없었는지 참 궁금했습니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사람들이라 모든 사람들이 농사일에만 매달렸지 도대체 학교 보낸다는 것은 아예 생각을 안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중학교도 혼자 다녔고 고등학생이 된 것도 동네에서는 제가 1호였죠. 그만큼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던 것이지요. 

 


남들이 아무도 생각안할 때 저를 가르칠 생각을 하셨으니 어머니는 일찌감치 앞을 내다보시는 천리안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저 학교 보내면서 학비 대느라 숯을 팔러 다니기도 하고 버섯 팔러 다니기도 하셨죠. 

머리에 큰 광주리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몇 십리씩 발이 부르틀 정도로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다 팔고 나서야 집에 들어오셨습니다. 

 

물건 파는 것도 수완이 좋았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못 팔아도 어머니는 언제나 다 팔았으니 어머니 재주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정말 신기했습니다.     

제게는 중학교가 너무 멀고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학교가면 피곤해서 졸기 일쑤였고 집에 오면 교복도 안 벗은 채로 쓰러져 잠에 곯아떨어지곤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새벽밥을 지어놓고 곤히 잠든 저를 깨우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자도록 놔두다가 지각하는 일도 있었지요. 피곤해 곯아떨어진 저를 차마 깨울 수가 없을 정도로 측은해 보였겠지요.      

학교는 멀고 다니기 힘들었어도 그런대로 공부만큼은 제법 잘했지요. 어머니가 그렇게 기뻐하셨고 자랑하셨잖아요. 

사람들만 오면 신이 나서 우리아들 공부 잘한다고 자랑보따리 늘어놓으셨잖아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어머니도 그토록 힘든 새벽밥에서 해방이 되셨죠. 그리고 저는 고등학교로 들어갔고 그때부터 어머니 곁을 떠나 지겨운 객지생활을 하게 되었죠. 

 

 

어머니께서는 농사지은 쌀을 직접 가지고 공주까지 오셔서 저의 하숙집 주인에게 부탁하셨죠. 우리아들 해줄 밥 농사지은 이 쌀로 해서 주라고 말입니다.     

그렇게도 자식이 소중하고 자랑스러웠습니까? 

어머니? 저는 어머니 기대와는 반대로 대학에 떨어졌죠. 어머니 실망이 무척 크셨잖아요. 다음해에 대학에 합격했죠. 그것도 장학생으로요.  


어머니는 마치 당신이 합격하기라도 한 듯이 너무 좋아하셨죠. 내가 군대갈 땐 어머니 많이 우셨죠. 항상 그랬잖아요. 제가 힘들면 다시 일어서게 용기를 심어주시고 제가 좋으면 같이 웃고 기뻐하시고…     

군대 갔다 와서 대학복학하고 4학년이 되어서 제가 어머니에게 말씀드렸죠. 

사귀는 여자와 결혼을 하겠다고요. 어머니는 한번 보자고 하셨죠.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제가 소개했지요. 어머니는 제가 사귀는 여자를 단 한번 보고는 그 자리에서 좋다고 OK 하셨죠. 

내 아들이 좋아하는 사람 골랐으니 무조건 좋다고 하시면서 두말 않고 결혼 승낙하신 어머니 너무 멋쟁이셨어요. 
 
어머니 제가 그 덕분에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살고 있잖아요. 

그때 그 여자 너무 착하고 좋은 며느리라는 것 어머니가 누구보다도 잘 아실 테니까요.     

어머니는 제가 대학졸업하고 첫 직장 잡았을 때도 저보다 더 기뻐하셨고 제가 첫 딸 둘째 아들 얻었을 때도 저보다 더 기뻐하셨죠. 

 

 

어쩌면 어머니는 주름투성이 할머니가 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자식 사랑엔 끝이 없는지요. 제가 가정을 꾸려서 생활한지도 벌써 22년이 되었군요.  


장남이면서도 어머니 한번 제대로 모셔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아직까지도 어머니 도움만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머니.     

지금도 어머니는 제가 아프다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오시지요. 어머니 몸은 더 만신창이가 되어 아픈데 당신 몸은 생각 않고 말입니다. 

아니 아예 자식 걱정될까봐 아프더라도 아픈 척도 안하시잖아요. 이제 그런 생활에 아주 익숙해지신 어머니이기에 당신께서 무슨 말을 안 하셔도 저는 다 알고 있어요.     

제가 너무 힘들어서 하루는 어머니에게 염치없는 요구를 했지요. 돈 1천만 원만 부쳐달라고요. 어머니께서 단 한마디 왜냐고 묻지도 않고 두말 않고 보내주셨지요. 

 

 

저는 많이 울었습니다. 결혼해서 자식 낳고 살면서도 끝까지 어머니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서 힘들게 한 죄책감 때문에 며칠을 울고 그런 요구마저도 마다않고 들어주신 어머니가 고마워서 며칠을 울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그런 요구 안해야지 하면서도 조금만 아쉽고 힘이 들면 어머니한테 자꾸만 의지하고 부탁하게 되니 자식은 늙어서 허리가 꼬부라져도 어려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 이제는 당신만 생각하세요. 이제는 남은 가족들 제가 챙기겠습니다. 이제 사시면 몇 년이나 더 사시겠습니까. 매일 몸이 안 좋아서 밤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는 어머니 그동안 너무 힘들게 살아오셨습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시는 것만으로도 저에겐 큰 힘이고 축복입니다.  어머니 이제 이 못난 자식걱정 그만 하시고 오래 오래 사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자식이 꿋꿋하게 잘사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셔야지요.

 


그렇게 어머니 속을 끓이게 만든 못난 자식이 이렇게 장하게 자라서 사회에 한몫하는 훌륭한 사회인이 되었다고 자랑하셔야지요.       

저도 결혼해서 자식 얻고 부대끼며 살다보니 어머니의 그 크신 자식사랑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제게 쏟은 정성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이라도 어머니에게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평생을 베푸신 그 큰 사랑을 먹고 저도 이렇게 떳떳한 사회인이 되어 험난하고 거친 세상에 잘 적응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못난 자식위해 자신을 버리고 평생을 희생과 헌신으로 살아오신 어머니, 이제는 잃어버린 당신의 이름 석자와 함께 영원히 어머니의 훈장을 제 마음속에 새겨 드리겠습니다.     

77세 복 진 옥. 이 나라의 군주이신 대통령보다도 제게는 어머니가 더 높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학교 문턱을 밟아 본 적이 없어 비록 지식은 없어도 지혜는 철철 차고 넘치는 어머니 당신은 제게 앞으로도 영원한 하늘이고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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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naver.com>


2003년 09월08일 16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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